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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 Double Bind (이중구속)
  • 작성자 : 비움심리상담
  • 작성일 : 2017-07-12
  • 조회 : 5864

Double Bind (이중구속)

 

 

Double Bind (“이중구속” 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는 1956년에 인류학자이자 언어학자인 그레고리 베이트슨(G.Bateson)이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발표한 이론적 개념이다. 

double bind(이후부터는 이중구속)는 간단히 말해서 상반되는 메시지(대부분은 요구)가 동시에 전달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모나 가족이 말로는 “사랑한다”고 하면서 똥씹은 표정을 짓는다거나, 직장 동료가 말로는 “편하게 대하라”고 하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거나, 교수가 수업시간에 “자유롭게 발언하라” 고 하면서 정작 질문을 하면 씹어버린다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 정작 그런 아이디어를 내면 더 많은 업무로 처벌을 내리는 회사의 회의실 장면이 그런 상황이다. 

이중구속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늘 여러개의 정보채널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때 언제나 하나 이상의 채널을 사용한다. 문자로도 변환될 수 있는 언어메시지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언어에도 어조가 있고 뉘앙스가 있으며 악센트나 기타 등등의 방법으로도 텍스트로 전달된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게다가 얼굴을 보고 의사소통하는 경우에는 표정, 자세, 행동과 같은 더 뚜렷한 다른 채널들도 같이 사용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자면 이 채널들이 온전히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대할 때만이 바로 그렇게 이구동성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만약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내적인 갈등을 느끼고 있거나,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거나,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위와 같은 이중구속 적인 메시지가 발생한다. 

내 경우도 늘 말로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더 많은 질문을 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그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과연 내 말과 온전히 일치하는 태도를 보여주는지 의심을 하게 된다. 가끔은 질문이 너무 멍청해보여서, 혹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심지어는 그냥 대답하기 귀찮아 할 때도 있고, 그럴 때면 분명히 내 몸의 어딘가에서는 “질문 자꾸 할래?” 라는 메시지를 흘리고 있을테니 말이다. 

이중구속은 메시지 자체의 모순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순수해져라” 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이중구속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순수는 순수해지려는 의도조차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순수해지기 위해서(혹은 순수해지라는 말을 듣고) 순수해진 것은 결코 순수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순수해지라”는 말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요구이며 이중구속이 된다. “너는 나를 사랑해야 해”라는 말도 이중구속이다. 사랑은 자발적인 행동이어야 하는데 그것이 명령이 되니까. 마찬가지로 “니가 알아서 좀 해” 라는 말도 굳이 따지자면 이중구속이다. 이미 알아서 하고 있었을텐데, 그게 마음에 안들때 이런 말을 한다. 따라서 알아서 하라는 말은 사실 "니 맘대로 하지마"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이들이 이런 이중구속 상황에 민감하고 그래서 더 타격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는 아이를 지극히 이중구속적인 상황에 꼴아박는 질문이다. 애가 어느 쪽을 선택하란 말인가. 친척이나 손님을 불러다 놓고 아이에게 “너 평소에 하던 것 좀 해 봐라”라고 말하는 것도 지극히 이중구속적이다. 손님 앞이면 이미 “평소”가 아니거든. 이런 상황에 처한 아이들은 말 그대로 몸이 꼬이고 마음이 꼬여서 미칠려고 한다. 

베이트슨은 실제로 어쩌면 정신분열증이 이 이중구속적인 상황에서 유발되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신 주변에 말과 행동이 늘 어긋나는 인간이 있다고 치자. 그래서 그 인간의 말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치자. 어떻게 하면 될까? 그 인간을 안보고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면 된다. 하지만 만약에 그와 매일같이 마주쳐야 한다면? 그 믿을 수 없는 인간을 믿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그 인간이 당신이 생존하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부모라거나, 당신이 믿고 지내야 하는 친구나 연인이거나,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상사이거나, 혹은 당신이 몸담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인간을 믿어야 할 때, 모순되는 말과 행동에 나 자신을 맞춰야 할 때, 우리는 미치고 팔짝뛰게 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몇 개월, 몇 년, 혹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고 할 때 정신줄을 놓치는 사람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최근에 누군가가 남에게 “세뇌되었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이것 역시 어떤 면에서 이중구속이다. 이 말 속에는 "니가 만약 세뇌되지 않았다면 증명해봐"(라는 요구)가 포함되어 있는데. 사실 어떻게 해도 자신이 세뇌되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의 논리가 딱 그런 이중구속이었다. 마녀를 감별하는 법은 마녀를 묶어서 강물에 던지는 것이다. 만약 그녀가 꽁꽁 묶인 채로도 물위에 뜬다면 그녀는 마녀이므로 죽여야 한다. 인간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녀가 물에 빠져 죽어버린다면, 그제서야 그녀는 마녀가 아니다. 어쨌든 일단 마녀로 찍히면 죽어야 끝났다. 

누군가는 바로 그런 이중구속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절벽에서 몸을 던졌다. 그래도 여전히 그에 대해서는 이중구속 메시지를 보내는 인간도 있다. 죽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살면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삿대질을 하다가, 그가 죽으니까 죽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삿대질이다. 어쩌란 말인가. 

뭐 그런 이중구속은 워낙 많이 경험해봐서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면 다행이다. 
둔감화. 그거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살아남는 길인지도 모르겠다.

* 참고: Double Bind와 종종 혼동되는 개념이 Double Blind(이중맹목) 이다.
Double Blind는 실험을 할 때 실험을 하는 사람이나 실험대상자 모두 그 실험의 정확한 목적이나 처치의 내용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실험자와 피험자 둘 다 모르기 때문에 더블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 하면, 그 사람들의 주관적 기대가 실험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대에서 약의 효과를 실험할 때도 (환자 뿐만 아니라) 약을 주는 의사도 지금 자기 환자에게 주는 약이 가짜약인지 진짜약인지 몰라야 제대로 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가 플라시보 효과를 보일 수 있다면, 의사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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