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영아기)는 신뢰 대 불신 단계로 유아가 세상에 대한 신뢰 관계를 수립하는 시기이다. 2단계(유아기)는 자율성 대 수치 단계로 자신의 의지와 통제력을 발달시킨다. 3단계(초기 아동기)는 주도성 대 죄의식 단계로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에 관여함으로써 목표감과 가치를 추구한다. 4단계(후기 아동기)는 인지적, 사회적 기술을 연마하여 역량감을 키우는 근면성 대 열등감 단계이다. 5단계(청소년기)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 자아 정체감 대 역할 혼미의 단계이다. 성인 초기의 6단계는 친밀한 대인 관계를 형성하는 친밀감 대 고립감 단계이며, 중년기의 7단계는 다음 세대를 위해 생산을 하고 희생을 하는 생산성 대 자기 침체의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노년기인 8단계는 자신의 인생을 평가하고 삶이 의미 있었음을 인식하는 자아 통합 대 절망의 단계라고 보았다.
2. 에릭 에릭슨
에릭 에릭슨(Erik Erikson, 1902–1994)의 이론은 영유아기에서 노년기까지의 광범위한 발달 이론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고전적 발달 이론 중에서 가장 풍부하고 포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에릭슨은 20대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1895-1982)와 교류하며 정신분석 이론을 연구하며 이론적 기초를 닦았다.
하지만 유럽에서 그가 활동할 만한 시기는 길지 않았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태인(하지만 그의 생부는 덴마크 사람이었다. 그가 청소년기 ‘자아 정체감’에 관심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그 자신이 정체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맥락에서 자랐다는 점에서도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다)인 그는 히틀러의 출현으로 인해 유럽을 떠나야 했으며, 대부분의 성인기를 ‘미국에서 거주하는 덴마크계 유태인’으로 보냈다.
에릭슨은 20세기 초반의 정신분석학자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경험적 연구를 주로 수행하던 과학적 심리학자는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저서에서 드러나는데, 이 저서들은 현재에도 매우 영향력이 있으며, 여기에는 그의 정신분석학적 통찰과 문화 이론 및 역사적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3.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의 특징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는 프로이트이며, 에릭슨 역시 정신분석학자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서도 프로이트의 영향력을 당연히 관찰할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과 마찬가지로 에릭슨 또한 연령, 혹은 시기에 따른 단계적 발달을 제안하고 있으며, 최소한 청소년기까지의 발달 단계의 구분은 프로이트의 심리 성적 발달 단계의 연령대와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에릭슨의 이론은 프로이트 이론과 비교할 때 크게 두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을 보인다.
첫째, 프로이트는 아동이 성숙함에 따라 그들의 성적 쾌감의 원천이 구강에서 항문, 성기로 옮겨가면서 발달 단계가 나뉜다는 심리 성적(psychosexual) 발달 단계를 제안했다. 반면 에릭슨의 이론은 성적 쾌감을 포함하는 동시에 아동과 그들에게 중요한 인물, 혹은 아동을 둘러싼 사회 문화적 맥락간의 상호작용에서 발달의 원천을 찾고자 했다. 즉 개인의 생물학적 욕구보다는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가 성격 형성에 더 중요하다고 보았으며, 개인이 새로운 발달 시기에 획득한 능력이나 관심이 그가 상호작용하고 있는 사회의 요구와 얼마나 들어맞는가에 의해 개인의 적응이 영향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의 발달 이론은 심리 사회적(psychosocial) 발달 이론이라 일컫는다.
두 번째, 프로이트는 성격 발달이 청소년기 이전에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는 성기기(genital stage)에 이르러 성인의 성적 취향을 가지게 된다면 더 이상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에릭슨은 개인과 사회와의 상호작용을 강조했기 때문에 변화와 성장은 청소년기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보았다. 청소년기와 중년기, 노년기의 사회적 상호작용의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심리 사회적으로도 다른 발달 단계에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발달 이론은 영아기에서 죽음에 이르는 전 생애에 걸쳐 제시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에릭슨은 최초의 전생애 발달 심리학자라고 할 수도 있다.
4.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단계
언급했듯이 에릭슨은 영아기에서 죽음까지 전 생애에 걸친 발달 이론을 제시한다. 그는 발달이 여덟 단계로 진행된다고 제안했다.
1단계. 신뢰 대 불신(Trust vs. Mistrust) 단계
프로이트는 생애 첫 단계를 구강기(oral stage)라고 칭했다. 즉 입 주변에 성적인 만족감을 얻는 시기이며, 신생아들이 보이는 빨기 반사나 모유 수유의 행동을 이러한 틀에서 설명하고자 했다. 반면 에릭슨의 이론은 입으로 빠는 행동 자체를 넘어선다. 모유 수유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영아와 엄마와의 상호작용을 만들어 내며, 여기서 심리적 특징이 발달한다.
에릭슨은 신뢰(trust)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에 대한 느낌(Erikson, 1968)”로 정의한다. 신뢰를 형성한 영아는 엄마가 자신이 배가 고플 때 음식을 주고 두려움이나 고통을 느낄 때 위로를 준다는 기대감을 형성한다. 아기는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통제력을 발달시킨다. 엄마와 신뢰감을 형성한 아이는 엄마가 잠시 자리를 떴다 하더라도 그녀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으며, 지나친 불안이나 걱정을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부모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거나, 필요할 때 부모가 자신에게 없을 것이라는 불신감(mistrust) 역시 이 시기에 발달된다. 물론 불신감은 신뢰감에 비해 부정적인 속성이며, 이후의 적응을 위해서는 불신감 대신 신뢰감을 적극적으로 발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불신감이라는 경험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릭슨은 각 단계마다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갈등을 일으키며 발달한다고 보았다(Erikson, 1976). 역설적이지만 신뢰감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수준의 불신 역시 어느 정도 경험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통해 자아가 발달한다.
이는 단순히 영유아기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연령과 상관없이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불신의 능력이 필요하며, 이는 우리의 생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즉 ‘유아가 분별 있는 신뢰감을 발달시키려면 어느 정도의 불신을 경험해야 한다’(Erikson, 1976, p.23).
물론 불신감이 신뢰감에 비해 과도하게 높아지면 분명히 발달에 부정적이다. 아기가 이 시기의 자아 역량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신뢰감과 적절한 불신을 모두 경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험은 아기들에게 희망(hope), 즉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성을 발달시키며 이들로 하여금 외부 세계를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든다(Erikson, 1982)
2단계. 자율성 대 수치와 회의(Autonomy vs. Shame and Doubt) 단계
프로이트의 두 번째 단계는 항문 주위가 중요한 성적 쾌감의 원천이 되는 항문기(anal stage)의 단계이다. 프로이트는 이 시기의 유아들에게서 배설물을 보유하고 참거나, 최종 배설의 쾌감을 극대화시키는 행동이 나타나고, 배변 훈련이 시작된다는 점에 집중하여 항문기의 개념을 제안했다(Freud, 1913/1959).
에릭슨 역시 이 시기의 행동이 보유와 배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 양식은 단지 항문 부위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물건을 잡거나 던지는 행동 역시 같은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다(Erikson, 1982).
2단계 유아에게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신체적 변화는 이들이 걷고, 말하고, 소위 ‘환경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시기가 된다는 것이다. 2단계의 유아들은 환경에 대한 통제를 통해 어떠한 사건을 취하고 어떠한 사건을 놓아 두어야 하는지 선택하는 경험을 시작한다. 또 자신의 세상에 대한 통제를 표출하는 동시에 이를 사회적으로 적합한 행동으로 표현함으로써 자기 자신 역시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항문기의 ‘배변 훈련’이란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아동의 의지와 사회 규제 간의 갈등이다(Crain, 2010).
이 시기의 갈등이 ‘자율성 대 수치와 회의’라 명명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율성이란 생물학적 성숙에 근거하여 어떤 일을 하는 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대두된다. 반면 이러한 행동에 사회의 기대와 압력을 의식함으로써 수치와 회의가 생성된다. 이 두 번째 위기를 긍정적으로, 즉 자율성과 회의감을 적절히 경험하여 해결한다면 아동은 의지(will)를 발달시키게 되며, 이것은 개인이 사회에서 기능하는 구성원이 되는 단초 역할을 한다(Crain, 2010).
3단계. 주도성 대 죄의식(Initiative vs. Guilt) 단계
3단계는 프로이트의 남근기(phallic stage)에 해당되는 초기 아동기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 시기의 아동은 자신의 성기에 관심을 집중하며, 이성 부모에 대한 사랑과 동성 부모에 대한 경쟁심을 발달시키는 단계라고 보았다(Crain, 2010).
프로이트는 이 시기의 아동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해소하고자 초자아를 형성하고, 부모에 대한 동일시를 이룬다고 보았다. 에릭슨 역시 이 시기에 아동의 동일시가 발달한다고 보았다(Erikson, 1982). 하지만 그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비해 훨씬 덜 성적이고 더 사회적이다.
에릭슨은 남근기의 아동이 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을 ‘만들어 내는’ 행동, 즉 목표를 형성하고 수행하고, 경쟁하는 소위 관입(intrusion)의 행동 양식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관입의 노력을 기울이는가, 즉 주도성(initiative)이 이 시기 발달의 핵심 개념으로 대두된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자신의 계획과 희망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 즉 어떤 행동에는 사회적 금기가 있고 생각보다 훨씬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이는 죄의식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죄의식은 결국 초자아로 내면화되고 자기 억제의 기능을 발달시킨다(Crain, 2010).
4단계. 근면 대 열등감(Industry vs. Inferiority) 단계
프로이트에 따르면 네 번째 발달 단계인 잠복기는 사실 다른 시기에 비해 두드러진 충동이 표출되지 않는 시기이다. 에릭슨 역시 이 시기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시기에 비해 내적 갈등과 새로운 성취를 향한 갈등이 적다고 보았다(Erikson, 1982). 하지만 이 시기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데, 특히 사회화에 필요한 핵심적인 인지적, 사회적 기술을 습득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 4단계의 시기는 학령기의 연령대로, 이 시기의 아동들은 학교에 입학하며, 사회에서 규정한 공식적인 학교 시스템에 편입된다. 또한 굳이 학교뿐만 아닌 가정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또래와의 놀이 맥락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학습 기회가 제공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성공적인 경험을 통해 아동은 근면감(industry)의 획득, 즉 유능감에 대한 감정을 발달시키도록 만든다. 반면 이 경험이 실패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고 열등감이 생긴다. 물론 열등감을 느끼는 것은 보다 나은 상태로 이행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는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나친 열등감은 분명 적응에 좋지는 않을 것이다(Erikson, 1964).
5단계. 자아 정체감 대 역할 혼미(Identity vs. Role Confusion) 단계
청소년기 이후의 단계는 프로이트의 단계 중 성기기(genital stage)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프로이트 발달 단계의 최정점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생식기에 대한 프로이트의 언급은 그다지 많지 않다. 청소년기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의 공헌이 더 많은데, 에릭슨은 주로 안나 프로이트와 교류한 인물로서, 그의 이론이 특히 청소년기 발달 이론으로 가치가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소년기는 사회적 요구와 생물학적 성숙이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이며, 이에 따른 역동의 결과로 이 시기의 특수 발달 과제가 생긴다(Erikson, 1968). 생물학적으로 볼 때 청소년기는 신체적, 성적인 성숙이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이며, 이러한 급격한 성적 성숙은 자아가 위협을 감지하는 정신분석적 원인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청소년기의 문제는 단지 생물학적 문제에서만 유발되지는 않는다. 사회와 문화에서 요구하는 가치에 대한 갈등 역시 청소년기 때 두드러진다. 현대 사회의 청소년은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중간 단계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상충되고 모호한 요구가 증가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와 사회 문화적 변화는 자기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한다. 그와 동시에 청소년기는 다양한 가능성이 제시되는 시기이기도 하며, 청소년들은 이러한 가능성에 자신을 던지며, 실제로 가능성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얻는 시기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청소년들은 이 시기에 내가 누구이고 이 사회에서 나는 어떠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개념, 즉 자아 정체감(ego identity)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즉, 수많은 가능성과 불분명한 역할이라는 역할 혼미(role confusion)의 위기를 통해 자신의 위치를 찾는 시기라는 것이다(Erikson, 1968).
자아 정체감 형성은 대체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모든 청소년이 이 시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들은 미래의 가능성에 압도당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지 못해 방황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아 정체성 확립에 개입되지 못하고 스스로를 찾기 위해 일종의 ‘타임 아웃’시기를 가지는 것을 심리적 유예(psychosocialmoratorium)라고 한다. 유예기 동안의 청소년은 다양한 맥락에서 자신의 위치를 시험해 보는데, 청소년의 매우 변덕스러운 행동들은 유예기를 통해 자신의 설 곳을 찾고자 하는 능동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다.
6단계. 친밀감 대 고립감(Intimacy vs. Isolation) 단계
프로이트 발달 이론에서는 청소년기 이후의 발달은 모두 성기기로 통칭된다. 하지만 에릭슨의 이론에서는 이후에도 발달 단계가 다시 세 가지로 구분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시기 이후의 심리 사회적 이론은 프로이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는 에릭슨의 순수하고 독자적인 통찰이 강하게 드러나는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청소년기를 지난 성인 초기의 단계는 친밀감 대 고립감의 단계라 일컫는다. 청소년기의 단계는 기본적으로 자기 몰두에 해당된다. 반면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이들은 자기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도 넓힐 필요가 있다. 즉, 성인 초기의 발달 과제는 타인과의 의미 있는 대인 관계를 형성하여 친밀감(intimacy)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Crain, 2010).
다른 모든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전 시기의 적절한 발달은 이후의 발달을 돕는다. 이 시기에 적절한 친밀감을 형성하려면 5단계에서 합리적인 정체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너무 자의식적인 인물은 좋은 대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대인 관계를 이루지 못하여 형성되는 경험은 고립감(isolation)의 발달로 표현된다(Erikson, 1982)
이 단계의 발달 역시 친밀감과 고립감의 갈등을 통해 드러난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고립감은 건강한 발달을 위해 필요하기도 하며,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아무리 친한 사람끼리라 하더라도 완전한 내가 아닌 이상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반목과 고립감을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경험을 통해 적절한 수준의 친밀감을 형성한다면 보다 성숙된 자아 역량, 즉 ‘사랑’을 발달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Erikson, 1964)
7단계. 생산성 대 자기 침체(Generativity vs. Stagnation) 단계
성인 중기에 이르러 두 사람간의 친밀감을 형성하게 되면 이제 그 관계는 두 사람을 넘어서도 적용되기 시작한다(Erikson, 1982). 즉, 다음 세대를 ‘생산’하고 가치를 전수하는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산성은 좁게 말해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것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의 생산성은 다음 세대에게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전수하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물건을 만든다든지, 지식을 전파하는 행위 역시 생산성 있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다음 세대를 생산하고 양육, 지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를 희생할 필요도 동시에 대두된다. 부모는 자신의 만족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호의(care)를 통해 생산성을 발달시킬 필요가 있으며, 이 부분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과도한 자기 몰두, 공허, 지루함 등의 자기 침체(stagnation)가 나타난다고 보았다. 물론 대부분의 성인들은 일시적인 자기 침체기를 겪지만 이러한 위기를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는지는 중년기의 위기 극복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
에릭슨의 7단계는 이제 발달이 개인의 차원을 뛰어넘어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사회적 연속성의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함의한다(Miller, 2002).
8단계. 자아 통합 대 절망(Integrity vs. Despair) 단계
인생의 마지막인 노년기에 대한 전형적인 관점은 이 시기가 쇠퇴기이고 부정적이며, 정적인 시기라고 보았다. 반면 에릭슨은 이 시기 역시 내적인 갈등이 존재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시기라고 보았다. 이 시기의 갈등은 자신의 생애를 돌이켜보며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지 평가하면서 대두된다(Erikson, 1982). 인생을 살다 보면 다양한 후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수용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통합감(integrity), 즉 자신이 이전 세대 및 자신의 과거로부터의 일관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을 이해한다. 반면 자신과 자신의 인생에 대한 혐오,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과도할 경우 이는 절망감(despair)이라는 부정적 특성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5. 에릭슨 이론의 평가
사실 에릭슨의 이론 중 명백한 경험적 연구로 증명된 부분은 많지 않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에릭슨은 적극적으로 경험적 연구를 수행했던 과학적 심리학자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여전히 모호하며, 사변적이고, 검증하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Miller, 2002). 또한 비록 그의 이론은 프로이트 이론과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관점이 강하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상당수의 비판이 그의 이론에도 적용된다(Crain, 2010). 그의 이론은 프로이트 이론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남성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Gilligan, 1982), 다소는 작위적으로 프로이트 이론을 무리하게 연결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White, 1960).
그렇지만 에릭슨 이론은 여전히 현대 심리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프로이트 이론의 영향력이 거의 사라진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특히 청소년기 자아 정체감의 개념과 성인기의 발달 과업에 대한 연구에서는 아직까지도 그 이론적 근거를 에릭슨에서 찾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일부 현대 학자들이 에릭슨의 이론을 경험적 연구의 틀로 바꿔 보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제임스 마샤(James Marcia)가 제안한 정체감 지위 이론(identity status theory)으로(Marcia, 1966, 1987), 청소년기 정체감 연구에 큰 역할을 했던 이 이론의 근간에는 에릭슨의 관점이 자리잡고 있다. 그 외에도, 비록 연구 수행이 쉽지 않아 양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에릭슨의 이론에 근거한 성인 발달을 광범위한 연구 대상자를 대상으로 장기 종단적으로 살펴보려는 노력은 현대에도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예를 들어 Whitbourne, Zuschlag, Elliot, & Waterman, 1992; Zuschlag & Whitbourne, 1994).
집필 : 김근영(서강대학교 심리학과)
[네이버 지식백과] 에릭슨의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 [Erikson’s psychosocial developmental theory]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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