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은 어떻게 형성되고 변경되는가
첫인상과 같은 초기 정보(경험)는 중요한 인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첫인상과 다른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첫인상은 왜 중요하며, 왜 인상이 달라지는가를 생각해 보자.
면접 준비를 하면 늘 듣는 소리가 있다. “첫인상이 중요해!” 우리는 첫인상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다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애를 써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사람들이 외모에 관심을 두는 것에도 이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당신에게 ‘클라크’와 ‘해리스’를 소개시켜 주겠다. 위의 상자 안에는 A와 B로 표시한 두 사람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즉, “A는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고, ...... ” 그리고 “B는 냉철한 머리를 가지고 있고, ...... ” 얼마 안 되는 정보일 뿐이지만, (계속 읽기 전에) 최대한 추측을 해서, A와 B 중 누가 클라크이며, 누가 해리스인지를 판단해 보라.
인상 형성과 관련해서 ‘초두효과’가 있는데, 여기에서 초두는 첫머리, 즉 처음 제시되는 정보를 말한다. 초두효과는 처음 제시되는 정보가 인상 형성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위의 예에서도 A와 B의 소개는 첫 마디만 ‘따뜻하다’와 ‘냉철하다’로 다를 뿐이다. 여러분이 A가 해리스이고, B가 클라크라고 생각했다면, 초두효과가 적용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거친 발음은 남성적이고 갈등적인 것으로, 부드러운 발음은 여성적이고 온유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1) 그래서 필자의 추측이 맞다면, 따뜻한 가슴을 가진 A의 이름은 부드러운 발음, 즉 해리스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B는 클라크와 연관되는 것으로 판단되기 쉬울 것이다.
A와 B는 이름이 다를 뿐만 아니라, ‘좋아하는 음악’도 서로 다를 것 같지 않은가? 그 이유는 초두 정보가 나중에 오는 정보의 해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처음 제시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제시되는 정보를 해석하는 틀(프레임)을 제공하는 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인상에 따라 우리는 그 다음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제 눈에 안경”이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도 일어날 법한 것이다. 그런 왜곡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려고 하는 것이,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애를 쓰는 이유가 될 것이다.
왜 초기 정보는 중요할까?
첫인상의 문제는 달리 보면 초기 정보(경험)의 문제이다. 초기 정보는 경험자에게 ‘새로운’ 자극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변화에 예민하고 마찬가지로 새로운 자극에 민감하다. 새로운 자극은, 그것이 물체이든 인물이든 간에, 사람의 주의를 끄는데, 이런 사실은 실험 연구에서도 충분히 입증되었다. 새로운 자극이 등장하면, 뇌영상 촬영(fMRI)이 보여주듯이 뇌 활동이 활발해지며, 뇌파 기록(ERP)이 보여주듯이 익숙한 자극과 다른 뇌파, 소위 N100이 관찰된다. 이런 현상은 새로운 자극에 강한 주의가 주어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새로운 자극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게 나와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에 초점화된 깊은 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자극도 자꾸 되풀이 제시되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친숙한 자극이 될 것이다. 친숙한 자극은 신속하게 잘 처리되는 반면, 그것에 대한 뇌 반응은 오히려 점차 약해진다는 것을 연구들이 보여 준다.
단어 목록을 순서대로 제시하고 생각나는 대로 회상하게 하는 기억 실험을 보자. 예컨대, 이 문단 아래에 있는 글상자 안의 단어들을 ‘한 번’ 읽은 다음, 기억나는 대로 적어 보라. 이제 생각나는 단어들을 아래 목록에서 동그라미로 표시해 보라. (이런 실험을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그 결과가 더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회상한 단어가 제시된 순번을 확인해 보자. 그러면 목록의 앞머리를 차지한 두서넛 단어들과 목록의 끝머리를 차지한 두서넛 단어들이 목록 가운데 6번째 ~ 10번째 단어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잘 기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목록 앞머리가 잘 기억되는 현상을 초두효과, 목록 끝머리가 잘 기억되는 현상을 최신효과라고 한다. 만일 목록을 들려준 뒤 다른 일을 시켜서 즉시 회상을 방해하면, 최신효과는 관찰되지 않고 초두효과만 관찰된다. 다시 말해 목록의 앞을 차지하는 단어들은 더 오래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모임에서 자신을 기억시키고 싶다면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다.) 초두효과가 관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억하기 위한 심적 활동을 ‘시연’이라 하는데 시연을 많이 받는 단어는 장기기억에 더 잘 저장될 수 있다. 그런데 시연에는 양적 제한이 있다. 그래서 처음 제시되는 단어들은 경쟁 단어 없이 많은 시연을 독점 혹은 과점할 수 있지만, 나중에 그리고 마지막에 제시되는 단어들은 시연을 나누어 점유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시연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첫 단어들이 잘 기억되는 이유이다. 그러면 마지막 단어들은 왜 잘 기억되는가? 즉시 회상할 때 바로 여러분의 (작업)기억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연시키면 최신효과가 사라진다.
벽돌, 사과, 버스, 기둥, 바다, 상자, 장미, 모자, 칠판, 음악, 상추, 가방, 염소, 우산, 볼펜
이런 연구들은 초기 정보가 단지 처음이라서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에 우월적인 지위를 갖고 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첫인상효과에서 보듯이, 우리가 첫인상에 약한 심리학적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첫인상은 변하지 않는가?
그러나 첫인상이 계속 그대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눈에 콩깍지가 씐 열렬한 사랑도 거의 다 유효기간이 있지 않은가! 진상이 확연히 드러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나중에 너무 실망하는 일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는 왜곡된 첫인상(형성)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인상’을 만드는 능력을 지녀야 할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블링크]는 중요한 판단이 불과 2~3초 만에 순간적으로 일어나고 이런 순간 판단이 더 정확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판단은 흔히 통찰이나 직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데이터(정보)를 모아서 이리저리 분석해도 알아내기 어려운 진실을 순간 판단으로 알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그런 믿음이 있지 않은가. 종종 직감을 맹신하는 어떤 사람들처럼.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서 흔히 간과하는 것이 있다. 통찰이나 직관이 제대로이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의 경험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좋은 직관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 뇌가 오랜 세월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고, 추상화하고, 테마를 중심으로 결합하는 나름 각고의 노력이 바탕에 있어야 한다.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2) 그리고 “지혜는 시간과 더불어 온다.”(W. B. 예이츠)
그렇다고 너무 부담을 갖지는 말자. 어차피 우리는 그 시점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혹은 이미 통과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도, 사건들의 발생 빈도 혹은 확률에 매우 민감하다. 예를 들어, 거리로 나가서 두리번거리다 보면, 요즘 뭐가 유행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더 자주 본 얼굴을 (더 자주 본 사실과 더불어) 더 빨리 알아차린다.
그렇다고 일일이 세어서 통계표를 만든 것도 아니다. 당신이 의식적으로 하지 않아도 의식적으로 편중하지 않는 한, 당신의 뇌가 자동적으로 한다. 인간은 처음 경험하는 낯선 일에 대해서는 약해도, 반복되는 일에 대해서는 강해질 수 있다. 우리 뇌와 마음속에 축적된 경험의 총체가, 외관이나 가식의 함정을 피해 갈 수 있도록 신호를 준다. 열린 마음으로 그런 신호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는 좀더 현명해질 가능성이 있다.
즉, 우리는 첫인상의 영향을 받기 쉽지만,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첫인상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이는 마치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사실을 더 잘 알게 되는 통계의 원리와도 같다. 그래서 초기에 입수하기 쉬운 정보인 외모가 첫인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억되고 축적된 여러 경험의 목소리가 커지게 된다.
인상의 궤적
인간은 끊임없이 사건이나 사람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소위 느낌을 갖기도 하고, 정오를 판단하기도 하고, 그 다음의 행동을 결정한다. 첫인상은 낯선 대상을 자기 마음의 틀로 포착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생긴다. 그렇게 대략적으로 그려진 스케치(첫인상)는 반복되는 경험에 의해 다듬어지면서 고쳐지면서 점차 정교해질 것이다. 만일에 후속되는 경험이 첫인상과 크게 다르다면, 일종의 대비효과로서 그 반대의 인상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처럼 첫인상 이후의 반복되는 경험에 따라 인상은 끊임없이 조정될 것이다. 더 이상 조정할 일이 없다면 그것은 인상의 죽음이 아닐까? 인상도 우리와 더불어 생로병사를 겪는지도 모른다.
인상은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데에도 애써야겠지만, 선입견에서 벗어나서 남에 대한 올바른 인상을 만드는 데에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인상은 일종의 판단이므로 당연히 주의나 기억과 같은 배후의 심리과정의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무엇이 주목되는가, 무엇이 기억에 남을 것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인상 형성의 결정 요인들을 잘 이해하면 우리는 좀더 객관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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