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얼굴처럼 보일까
이 세 사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 사진은 NASA가 화성에서 찍은 것이다. 얼굴처럼 보이는 지형을 두고 한 동안 이게 화성에 문명이 있었던 흔적이라는 주장이 나돌았다. 얼굴은 이 외에도 눈이 녹은 자국, 구름, 여러 가지 물건들, 자동차, 건물 등 도처에서 발견된다. 거기에는 무언가 신비한 암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얼굴 형태를 보는 것
사물들에서 얼굴을 알아본다는 것은 신기하다. 위의 가운데와 오른쪽 사진은 당연히 얼굴을 찍은 것이 아니다1).그런데 왜 얼굴이 보이는 것일까? 혹은 왜 을 ‘웃는 얼굴’로 보는 것일까? 이것들은 실제의 얼굴과 전혀 닮지 않았으면서도 우리에게 ‘얼굴 같은’ 느낌을 준다. 만화나 크로키를 보면, 몇 개의 선만으로도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다. 사실상 얼굴처럼 보이기 위한 조건은 간단하다. 눈과 입 (그리고 종종 코) 위치에 적당한 크기의 형태가 배열되어 있으면 된다. 즉, 이목구비 성분의 배열이 우리가 얼굴을 알아보게 하는 틀(도식)인 것이다. 마치 건물을 (바닥과) 벽이 있고, 그 위에 지붕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Biederman(1987)은 ‘성분에 의한 재인(Recognition By Components; 흔히 RBC라 함)’ 모형을 제안했다. ‘재인’은 이전에 경험했던 것을 나중에 알아보는 일을 말한다. 그림에서 오른쪽에 있는 가방, 스탠드, 컵, 양동이 등은 왼쪽에 있는 단순한 지온들의 결합으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이처럼 ‘성분에 의한 재인’ 모형은 복잡한 물체들도 단순한 기하적 요소(지온(geon)이라고 부름)들의 조합으로 재인된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문자는 수평선, 수직선, 사선, 원호, 정점(교차점) 등의 조합으로 지각된다2).
물체나 문자(글자)의 지각과 재인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하는 모형들은 여러 실험 연구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런 모형이 의미하는 바는 물체나 글자 그리고 나아가 얼굴을 알아보는 데에 완전한 이미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분(성분)들의 관계가 적절히 표시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얼굴은 진짜 얼굴이어서 얼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목구비에 해당하는 부분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얼굴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목구비’도 마찬가지이다.
얼굴 같은’ 특징
앞에서 나온 스테이플러나 채칼, 그 밖에도 자동차나 집3)에서 우리가 얼굴을 재빨리 보는 이유는 얼굴에 있는 눈-코-입(얼굴 도식)과 물체의 부분들(배열)이 잘 대응되기 때문이다. 이런 대응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할 것이지만, 그 조건이 들어맞는 일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대응이 어중간하면 얼굴 지각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판의 미로’(영화)에 나오는 괴물의 얼굴은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만 있고 눈알을 손바닥에 박혀 있어서 관객들에게 놀람과 두려움을 준다. 그리고 ‘눈이 네 개인 고양이’ 그림4)에서 우리는 자꾸 두 개의 눈을 보려 하기 때문에, 일종의 지각적 혼란이 생긴다. 이런 예들은 우리가 “두 개의 눈 - 한 개의 코 - 한 개의 입”으로 된 얼굴 도식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런 도식에 들어맞지 않는 얼굴은 매우 괴이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얼굴 같음’이라 부를 수 있는 특징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화성의 지형, 스테이플러나 채칼의 한 부분은 그런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얼굴처럼 보인다.
이목구비의 특징 너머
얼마 전에 미국 텍사스 주 라마 카운티에서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남자 강도의 몽타주(그림의 왼쪽)를 발표했는데, 화가 레제의 그림 같기도 한 이 몽타주는 ‘사상 최악의 몽타주’라고 여러 사람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몽타주를 본 보안관에 의해 범인(그림의 오른쪽)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5). 몽타주와 실제 얼굴은 얼마나 닮았는가? 속눈썹, 입술, 턱, 귀 등을 하나씩 뜯어보면, 닮은 점보다 다른 점이 더 많다! 그런데도 전반적인 느낌, 예컨대 볼 살이 있어서 통통하고 둥글둥글한 느낌은 유사한 듯하다.
그렇다. 우리는 얼굴에서 눈, 코, 귀, 입만 보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흔히 말하는 어떤 ‘얼굴 상’을 볼 수 있다. Reed와 Friedman(1973)은 그림에서 윗줄의 도식적 얼굴들은 범주 1에 속하고, 아랫줄의 도식적 얼굴들은 범주 2에 속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 다음 스무여 개의 ‘새로운’ 얼굴들을 실험참가자들에게 주고 분류하라고 했다.
여러분은 윗줄과 아랫줄의 얼굴들이 어떻게 달라 보이는가? 실험참가자들이 새 얼굴들을 분류한 자료를 조사해 보니 그들은 이런 얼굴 배후에 있는 기본형태(얼굴 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들을 직접 배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우리는 여러 얼굴들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말 상’, ‘원숭이 상’이라고 부르는, 얼굴 배후의 어떤 ‘상’을 마음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 ‘얼굴 상’은 이목구비들의 크기나 간격 등에서 생기는 관계(그림을 보라), (달걀형, 세모 형이라 할 때의) 얼굴의 외형, 그리고 위 몽타주의 경우처럼 양감(볼륨감) 등에서 생길 것이다.
얼굴 재인의 특수성
사물에 대한 관심은 대체로 그 범주를 알아보는 것에서 끝난다. 말하자면, 이것은 의자이고, 이것은 자동차이고, 저것은 나무라는 것을 알아보면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거의 얻어진다. 그런데 얼굴을 두고, “이것은 얼굴이다”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곤란할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얼굴의 주인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개개의 얼굴을 확인하는 문제는 얼굴 재인에서 제기되는 다소 특별한 주제이다. 이런 문제는 얼굴 외에도, 가까이 있는 애완동물이나 개인용품의 경우에도 제기될 수 있다. 즉 우리집의 ‘특정한 개’가 보고 싶은 것이고, 내가 쓰던 펜을 찾는 것이며, 손글씨를 통해 가까운 누군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신속하게 개개의 얼굴을 알아본다는 점에서 얼굴 재인은 사물의 지각과 비교해서 특수한가? 뇌의 하측두엽에 있는 FFA(Fusiform Face Area) 영역은 얼굴 모양에만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얼굴재인영역이다6). 뇌에서 이런 영역이 있다는 것은 얼굴을 알아보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장치가 있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얼굴과 얼굴 재인은 사람(적어도 사람의 뇌)에게 특수하다고 주장할 만하다. 그런데 Gauthier와 동료들(1999)은 얼굴과 이상한 두상(그리블)들을 계속 보여주면서, 두뇌 활동의 영상(fMRI)을 찍었다. 그랬더니 처음에는 반응을 잘 하지 않던 FFA 세포들이 4일 후에는 잘 반응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은 그리블들을 재빠르고 정확하게 분류할 수 있었다. 즉 그리블에 대해 뇌가 얼굴을 보듯이 반응하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가 새나 자동차 전문가의 FFA 영역에서도 일어난다(FFA가 하는 일은 여전히 논쟁중이다).
우리가 도처에서 얼굴을 잘 볼 뿐 아니라, 아는 사람의 얼굴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얼굴을 오랫동안 보아 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얼굴 재인을 많이 연습했기 때문에, 얼굴 도식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친숙한 얼굴의 특징도 잘 잡아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원리는 다른 물체와 글자의 지각/재인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 점에서 얼굴 재인에 대해 특수한 점은 얼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굴을 매우 많이 경험한다는 것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애완동물이나 손글씨의 재인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될 것이다.
얼굴 재인의 복합성
얼굴을 알아보는 일은 매우 복합적이다. 얼굴 도식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슷한 얼굴 모양을 구별하는 특징(예, 머리 모양이나 색깔, 눈매, 코 모양 등)을 식별해야 하며, 게다가 이름을 기억해내야 하며, 경우에 따라 그 직업이나 지위, 그 밖의 배경 정보도 생각해내야 한다. 이런 일들이 종합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될 때 우리는 ‘그 얼굴’을 충분히 알아봤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얼굴 이미지가 자주 달라지곤 한다. 화장을 하거나 장신구를 달거나 머리 모양이 바뀌는 것이다. 이런 표면적인 변형을 간파하고 그 너머에 변하지 않는 특징들을 포착해서 얼굴의 신원을 식별하는 데에는 많은 지각적, 인지적 부담이 생긴다. 예를 들어 비전형적인 모습(실루엣)으로 변형되면 뇌에서도 그 변형을 복원하는 처리가 필요하다.
또 세월이 변하면서 생기는 얼굴의 변형을 극복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이다. 여기에는 좀더 동적인 정보가 필요할지 모른다. 필자는 몇 년 전에 동창회에서 반 친구를 만났다. 미안하게도, 그 친구가 낯익은 느낌은 들지만 도무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친구가 웃는 순간, 갑자기 이름이 떠올랐다. 이런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얼굴 특징들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 표정이나 그 움직임도 잠재적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우리는 먼 훗날에도 그 사람을 알아보게(혹은 느끼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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