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네트워크에서 연결 찾기베이컨의 수와 ‘좁은 세계’ 실험
영화배우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은 배두나(Doona Bae)와 얼마나 가까울까? 두 사람의 친분을 필자가 알 리는 없지만, 두 사람이 같은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다면, 혹은 베이컨과 같은 영화에 출현한 어떤 배우와 배두나가 같은 영화에 출현한 적이 있다면, 둘이 서로 가까운 거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일 수 있으니까. 사실, 배두나는 영화 <Cloud Atlas>(2012)에서 톰 행크스와 함께 출연했고, 행크스는 <Apollo 13>(1995)에서 베이컨과 함께 출연했으니, 두 편의 영화라는 고리를 통해 배두나와 베이컨은 연결된다. 가능한 여러 개의 연결들 중 가장 짧은 고리의 수가 바로 베이컨의 수이다.1) 그래서 배두나의 베이컨 수는 2이다 ([그림1] 참조).
사람들 간의 연결 단계에 대한 관심은 제법 오래되었지만, 경험적 연구는 사회심리학자인 밀그램 (Milgram)이 1967년에 시도하였다. 그는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와 캔사스 주의 위치타에서 시민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보스톤에 사는 낯선 사람에게 봉투를 전달하도록 요청했다. 바로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즉 알음알이로 전달하도록 했다. 그러니까 목표 인물을 모른다면, 자신의 지인들 중에서 목표 인물을 알거나 아니면 목표 인물로 잘 전달할 것 같은 사람을 골라야했다. 봉투를 받은 사람은 봉투에 들어 있는 우편엽서에 이름을 써서 연구자에게 보내도록 요청받았다.
중간에 거치는 사람의 수는, 각각 편차가 크고 회수된 봉투도 많지 않았지만, 평균적으로 대략 ‘6’이었다. 여기에서 “미국 시민은 6단계로 서로 연결될 수 있다” 혹은 “6단계로 서로 떨어져 있다”는 말이 나왔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서 세계인은 4.7단계로 연결된다는 연구도 나왔고, 효과적으로 연결했을 때 4단계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세계는 실제로도 좁은 모양이다.
인간 기억의 망
260만명(DB에 등록된 영화배우의 수), 약 1억8천만명(1960년대 미국 인구수), 그리고 약 70억(2014년 현재 세계 인구)의 사람들이 불과 몇 단계로 연결될 수 있다니! 연결 고리들을 지도에 그리면, 길거나 짧은 고리들이 항공노선도처럼 복잡한 망을 이룰 것이다. 이런 구조를 흔히 망(network)이라고 한다.
필자에게 ‘망’은 매우 친숙하다. 유력한 기억 모형 중 하나가 연합망(associative network)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림2] 참조). 연합은 두 개념이 ‘심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단어 ‘기차’에 대해, ‘철로’, ‘자동차’, ‘역’ 등이 생각난다면, 그 개념들은 ‘기차’와 연합 관계에 있는 것이다. 연합 관계에 있으면 그 중 하나가 생각날 때 다른 것도 덩달아 생각나기 쉬운데, 이런 현상을 ‘점화(priming)’라고 한다. 연합망 모형에서 개념들의 연합은 ‘고리(link)’로 표시되는데, 강하게 연합된 것들은 서로 가까이 있고, 약하게 연합된 것들은 멀리 떨어져 있다.2) 그리고 직접 연결되지 않는 개념들과는 중간에 있는 다른 개념을 통해서 혹은 몇 단계를 거쳐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연합 관계를 기초로 해서 만든 인간 기억의 지도가 연합망이다.
창의성: 개념 또는 생각의 연결
연합망은 왜 라면을 먹을라치면 김치가 생각나고, 어떤 친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그 두 가지가 일상생활에서 함께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왜 ‘기차’에 대해 ‘별’을 잘 생각하지 못하는지도 설명해 주는데, 그 둘은 함께 경험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3) 그래서 우리 생각은 자주 경험하는 것들 주변을 맴돌게 된다.
창의성에 대해 쾨슬러(Koestler)는 그의 저작 [The Act of Creation](1964)에서, 창의성을 ‘새로운 연결’을 찾거나 지각하는 능력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사실 이것이 창의성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예컨대, 새로운 연결을 ‘찾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연결의 ‘가치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 중요한 점은, 창의성이라는 것이 신비한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인지의 어떤 특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드닉 (Mednick)은 1962년의 연구에서, 원격 연합 능력이 창의성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원격연합검사(Remote Association Test)를 개발했다. 검사방식의 예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또한 어떤 창의성 검사는 소위 확산적(divergent) 사고를 재기 위해 한 물건(예, ‘벽돌’)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새로운 용도를 생각해내는가를 측정한다. 서로 낯선 것들끼리의 연결을 찾는 능력은 창의성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창의성의 중요한 측면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모두 창의적이고 싶지만, 보통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뭔가 생각을 하려 하면, 금세 생각이 막히거나 비슷한 생각들만 맴돌 뿐이다. 어디 가서 창의성 증진 훈련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창의성 훈련자도 정작 창의성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 있다. 신비한 창의성 대신, 질문을 좀 더 단순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만들자. 어떻게 하면 멀리 떨어진 개념들을 서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거대한 망의 제약
[그림3]은 최근에 조사된, 케빈 베이컨과 연결되는 사람의 수를 단계별로 보여 준다. 0단계는 베이컨 자신이고, 그와 같은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1단계의 배우는 2,902명이고, 한 다리 건너뛰는 (케빈 베이컨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사람과 함께, 다른 영화에 같이 출연한) 2단계의 배우는 334,004명이다. 그 수는 3단계까지 증가하다가 그 다음부터 감소한다. 다른 배우들을 입력해 봐도 대략 비슷한 패턴을 얻을 수 있다.5) 몇 단계만 거쳐도 굉장히 많은 사람과 연결된다.
개념들의 경우, 한 개념에서 1단계로 연결되는 개념의 수는 몇일까? 사실 잘 모른다. 그러나 케빈 베이컨의 표를 참조해 볼 때, 그 수는 단계가 증가할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어느 단계 이후에는 중복되는 항목들 때문에 연결 수가 감소할 것이다.
개념들이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지식이 방대하고 융통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리한 면도 가질 수 있는데, 새로운 연결을 찾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림3]의 표를 참조해 볼 때, 연합망에서 몇 단계를 거치는 동안 연결되는 기억 항목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처리 용량은 매우 낮아서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항목 수는 10개를 넘기가 힘들다. 게다가 부채 효과(fan effect. 연결 고리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인출 속도가 느려지는 현상)6)를 적용해보면, 한 기억항목의 활성화 총량은 일정한데, 이로부터 직접 연결되는 항목 수가 많을수록, 각 항목에 분배되는 활성화 양은 잘게 쪼개져서, 그 항목이 점화되어 활성화될 가능성은 떨어진다. 그래서 이런 거대한 망에서는 한 개념이 연합의 고리를 따라 새로운 또는 낯선 개념으로 연결될 확률은 매우 낮을 것이다.
게다가 기억 항목의 활성화는 오래 유지되지 않으므로, 최초의 활성화가 소실되어 아예 엉뚱한 생각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엉뚱한 사이트에서 헤매다 끝낸 적이 없는가?) 머릿속에 있는 많은 정보나 지식도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시간 동안에 연결되어야 가치가 있다.
멀리 연결하기: 새롭게 연결하기
밀그램의 실험이나 베이컨의 수에서 유추해 보면, 개념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같은 생각을 또 되풀이하는 것은, 새로운 생각으로 가는 적절한 연결 고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밀그램의 실험을 살펴보면, 참가자들은 지인 중 아무에게나 봉투를 보낸 것이 아니라, 목표 인물에 가까이 살거나, 목표 인물과 가까운 사이일 것 같은 사람에게 보냈다. 어떻게 연결하는 것이 좋을지를 궁리했다는 것이다. 이런 추리가 없었다면, 20단계의 연결도 실패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마을과 도시를 이루면서 모여 살듯이, 기억 항목들도 범주별로, 테마별로, 예컨대 현재 하는 일, 좋아하는 취미나 스포츠, 관심 있는 사회문제나 그 밖의 주제들 등을 중심으로 군집을 이루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도시로 빨리 가려면 고속도로를 이용하듯이,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공간이동하기 위한 경로를 찾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 목표에 도달하려면 생각을 달리 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1998년에 대학생들의 정보검색을 연구한 적이 있다. 특정한 질의 (ex : 한국의 5대강은 무엇인가?)에 대해, 검색결과가 신통찮은데도 실험참가자들은 검색어(ex: 강, 5대강)를 반복 입력하려 할 뿐, 결과를 토대로 새 검색어(ex:하천)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빨리 답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일 수도 있고, 방금 입력한 검색어가 가장 잘 머리에 떠오르기(활성화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문제를 다르게 보는 관점의 부재일 수도 있다. 정확한 원인이 어떠하든 이런 일은 일상에서 그리고 시험장에서 종종 벌어진다.
집중에서 벗어나기
새로운 연결을 위해서는 멀리 떨어진 생각들이 비슷한 시점에서 떠오를 때 (활성화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집중’은 방해가 된다. 집중한 상태에서 사람은 한 가지에만 주의를 기울이고 몰두하느라고 주변의 다른 단서(힌트)나 정보를 무시하기 쉬운데, 이를 터널시각(tunnel vision)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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