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문제 : 마음이 아프다는 것은?
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를 만나면 사람들은 자기 속을 들여다 볼 것 같아 조심스러워한다. 혹시나 자기를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볼까봐 불안 해 한다. 이런
태도는 한국사람들 뿐 아니라 미국사람이나 유럽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왜 사람 들은 이처럼 심리문제에
대해 민감할까?
그것은 심리문제를 정신병과 관련지어 생각하고, 또 정신병은 정신이
이상해져 변질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문제라고 해서 신체질병보다
더 나쁘거나 이상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심리문제도 신체질병과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 탓에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없어지는, 단지 우리에게 조금 불편한 현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문제는 밤에 이불을 제대로 안 덮고 자는 바람에 감기에 걸린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열이 나고 한기가 나다가도 약 먹고 며칠 푹 쉬고 나면 감기가 회복되는 것과 같이 심리적인 문제도 가족이나
친구와 대화하거나 혹은 심리치료를 받고 한동안 안정을 취하면 곧 원래상태로 회복된다. 심리문제는 신체질병과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다 있으며, 문제가 있다 해도 그다지 걱정할 일이
못된다. 즉, 우리 모두 조금씩은 신체질환을 다 갖고 있지만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듯이 심리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신체와 마음에 대해 차별을 두는 데 있다. 즉, 길바닥에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방치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친구와 대화 도중에 받은 상처를 그냥 무시하고 억누르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신체의 상처를
그냥 방치하면 곪아서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아픈 마음을 치료받지
않으면 점점 큰 병이 된다.
마음의 병이란 그렇게 거창한 것도 별난 것도 아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앓는 것도 아니다. 남들의 눈에 띄는 이상한 행동을 해야만 병이라고 볼 수 없다. 대부분 우리가 간혹 한번씩 하는 생각, 간혹 갖게 되는 심정, 불쑥불쑥 드는 충동들, 그런 것들 속에 이미 마음의 병을 발견할
수 있다. 다음에 드는 예들은 임상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환자들이 아닌, 평범한 우리의 친구들, 동료들의 이야기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라 우리는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덮어버리고 산다. 물론 임상심리학자나 정신과의사들도 이런 것들을 병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겨자씨를 겨자나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또한 아무도 겨자씨가 자라서 겨자나무가 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서른도 안된 젊은 여성이 사는 것이 힘들다며 가끔가끔 드는 생각이 이제 죽어도 세상에 큰 미련이 없다고 말한다. 그저 모든 것이 시들하고 재미가 없고 무언가를 꼭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든다고 한다. 그런데 특별히 직장에 적응을 잘 못하는 것도 아니고, 대인관계에
두드러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심리검사를 받아보아도 정상수치에서 크게 벗어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어느 부분에선가 병의 조짐이 보인다. 꿈을 부풀리며 날마다 의욕에 찬 기쁜 마음으로
일할 나이에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자신이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된다.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는 것은 막연히 느끼지만 그 이상은 생각할 수가 없다.
대학생 딸이 허리디스크가 생겨서 어머니에게 병원비를 좀 달라고 말했는데, 어머니는
갑자기 큰소리로 "사는 대로 살다가 죽지"하고
고함을 질렀다. 딸이 깜짝 놀라 쳐다보고, 어머니 자신도
놀라서 손을 입에다 갖다댄다. 돈이 그렇게 궁한 것도 아니다. 남편이
애를 먹이는 것도 아니다. 특별히 집안에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알뜰히 모은 돈으로 집도 장만했고, 이제 조금씩 형편이 풀려나가는 중인데 왜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갑자기 맘에도 없는 소리를 질렀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얼굴에 수심이 생겼고 자기도 모르게 가끔씩 한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다.
다른 친구들은 남자친구에게 요구를 잘 하던데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선뜻 어떤 요구를 잘 못하겠다. 혹시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단념해버리고 상대가 해주기만 기다린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남자친구 중심으로 어떤 행동이 이루어지고 자신의 요구는 잘하지 않게 된다. 어쩌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가도 그쪽에서 조금이라도 내켜하지 않으면 표정을 살피게 되고, 그런 자신이
때로는 비참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왜 항상 자기는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릴 때도 항상 오빠에게 양보했었는데 지금은 남자친구에게 늘 양보하는 자신이 속상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을 것 같다.
동료가 내게 부당한 행동을 했는데 항의하고 싶어도 그에게 되려 당할 것 같은 생각에 말을 못하고 참자니 속만
상한다. 늘 당하기만 하고 자기주장을 마음대로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생각을 하니 짜증이 나기도 하고
무력한 느낌이 든다. 그를 안 볼 수만 있다면 마음이 편하겠는데 매일 마주쳐야 하는 상황이라 정말 속상한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으니 참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척 속상하다. 요즘은 밥맛도 없는 것 같고 자주 우울해진다.
남편이 너무 시집일에만 신경쓰는 것 같아 한마디 했더니 버럭 고함을 질렀다. 화가
났지만 어릴 때부터 화를 내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참았다. 그때부터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속이 상해서 보름동안 서로 말을 안했는데 결국 위장병이 생겨 몇 달째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낫지 않는다. 남편과 생긴 일이라 자존심이 상해서 아무에게도 말을 못하다보니 혼자서 쌓이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려는데 마음이 불안해지고 계속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괜히 트집 잡게 되고, 별것 아닌 것 가지고 화를 낸다.
이러다가 말겠지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어릴 때 아버지가 집안을 돌보지 않고 외도를 하여 어머니와 함께 고생하던 생각이 떠올라 자기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안해진
것 같았다. 쓸데없는 생각이라 생각하고 떨쳐버리려고 해도 잘 안 되고 자꾸 안절부절 해지고 짜증만 났다.
이제까지 모범사원으로 매사에 깔끔하고 인정받으며 살아왔는데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나서 자리를 옮기면서부터 막연히
불안해지고 소화가 잘 안되고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혼자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특별히 일이 더 힘든 것도 아니고 동료들과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지 모르지만 새로운 상사에 대한 느낌이 불편한 것 같다. 그에게 결재를 맡으러 갈 때 몸이 긴장되고
편하지가 않다. 상사가 특별히 나쁜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좀 말이 없는 사람일 뿐인데, 괜히 자신감이 없어지고 제대로 내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하겠다. 그의
행동이나 인상이 어딘지 아버지를 연상케 하면서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 을 통제하기 힘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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